“두 기둥 너머로 대숲이 열린다”… 나무의 높이를 따라 걷는 사유림

부산 아홉산숲, 대나무 터널과 오래 가꾼 숲이 이어지는 기장 산책

부산 아홉산숲의 대나무 사이에 선 두 나무 기둥
부산 아홉산숲의 대나무 사이에 선 두 나무 기둥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울산지사 위브부산)

곧게 선 대나무 사이에 더 굵은 나무 기둥 두 개가 놓였다. 기둥 사이를 들여다보면 줄기들이 안쪽으로 거듭 이어지고, 시선은 저절로 땅에서 나무 끝으로 올라간다.

광고

부산 아홉산숲은 기장군 철마면에 자리한 사유림이다. 바다 풍경으로 기억하기 쉬운 부산에서, 대나무와 여러 수종의 숲을 중심에 놓고 걷는 시간을 만든다.

남평 문씨 일가가 1600년대부터 숲을 가꾸어 왔다는 연혁이 전해진다. 오랜 시간 관리해 온 대숲과 천연림이 함께 놓여 있어, 한 종류의 나무만 보고 나오는 곳과는 다르다.

11월 초 남쪽 여행에서도 붉은 단풍과 다른 장면을 선택할 수 있다. 이곳의 중심은 대나무의 줄기와 잎이 만드는 숲이다. 가을의 색이 얼마나 진해졌는지보다 나무가 하늘을 나누는 모양을 따라가게 된다.

여행지의 운영 조건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해 주세요.

부산 아홉산숲, 돌계단 너머로 들어가는 숲

돌계단과 이름 표지가 놓인 아홉산숲 입구
돌계단과 이름 표지가 놓인 아홉산숲 입구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관광공사)

입구에는 이름을 새긴 돌과 계단이 놓이고 나무가 그 둘레를 감싼다. 대나무가 빽빽한 대표 사진을 보기 전, 숲과 마을의 경계부터 통과하게 되는 공간이다.

공식 현황에 따르면 아홉산숲에는 대나무를 비롯해 편백·삼나무 등의 조림지와 소나무·참나무 등이 있는 천연림이 함께 있다. 사람이 심고 가꾼 구역과 오래 이어진 숲이 한 장소 안에 겹친다.

광고

한 장면만 목표로 삼으면 이 차이를 지나치기 쉽다. 입구의 돌과 넓게 퍼진 가지부터 보고, 가늘고 곧은 줄기가 이어지는 구간으로 눈을 옮기면 숲의 밀도가 바뀌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흙길이 굽으면 줄기의 간격도 달라진다

대나무 줄기 사이로 굽어지는 아홉산숲 흙길
대나무 줄기 사이로 굽어지는 아홉산숲 흙길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울산지사 위브부산)

대숲 안의 흙길은 곧게만 뻗지 않는다. 완만하게 굽은 길 양옆으로 대나무가 서고, 가까운 줄기는 굵게, 먼 줄기는 촘촘한 선처럼 겹쳐 보인다.

길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숲 안쪽을 보는 각도도 달라진다. 줄기 사이로 깊이 들어가는 시선과 길바닥을 따라가는 시선이 번갈아 이어져, 같은 대나무라도 단조로운 벽처럼 남지 않는다.

대나무 기둥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과 숲 전체를 바라보는 산책은 속도가 다르다. 대표 장면을 지난 뒤에도 주변 나무의 결을 살피면, 처음에는 비슷해 보이던 줄기들의 굵기와 간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광고

가까이 보면 잎과 마디가 나눈 빛

아홉산숲 대나무 줄기와 가는 잎의 가까운 모습
아홉산숲 대나무 줄기와 가는 잎의 가까운 모습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관광공사)

멀리서는 숲 전체가 가는 세로선으로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줄기를 나눈 마디와 가늘게 뻗은 잎이 먼저 드러난다. 뒤쪽 줄기들이 흐릿해질수록 앞의 작은 잎이 또렷해진다.

대나무가 가진 녹색은 단풍나무의 붉은 잎을 기다리는 여행과 다른 기준을 준다. 가지 끝의 빛과 줄기 사이의 그늘만으로도 시선이 머물 자리가 생긴다. 주변의 활엽수는 저마다 다른 속도로 계절을 지나므로 대숲과 곁의 나무를 함께 바라보게 된다.

숲의 세부를 보려면 길 밖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정해진 탐방로 안에서 가까운 줄기와 먼 숲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으로도 장면이 충분히 달라진다.

대나무 밖에도 숲의 시간이 쌓였다

대숲과 다른 층의 나무와 뿌리가 드러나는 아홉산숲
대숲과 다른 층의 나무와 뿌리가 드러나는 아홉산숲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울산지사 위브부산)

다른 수종이 모인 구간에서는 줄기의 굵기와 가지가 뻗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바닥 가까이 드러난 뿌리와 낮은 식생이 겹쳐, 곧은 대숲과 다른 층을 만든다.

광고

공식 연혁에는 가문이 정착한 뒤 기존 숲을 관리하고, 해방 후에는 구역별로 나무를 심어 온 과정이 담겨 있다. 사유림이라는 말은 출입 방식뿐 아니라 풍경이 만들어진 배경도 설명한다.

걷는 동안에는 대나무의 균일한 선과 다른 나무들의 굽은 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숲을 하나의 초록 배경으로 묶기보다, 심어진 곳과 자라 온 곳의 표정을 나누어 보는 시간이 된다.

하늘을 올려다본 뒤, 숲의 규칙을 남긴다

대나무 끝 사이로 하늘이 열리는 아홉산숲의 수관
대나무 끝 사이로 하늘이 열리는 아홉산숲의 수관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울산지사 위브부산)

머리를 들면 대나무가 바깥에서 안쪽으로 모이며 하늘 한 조각을 남긴다. 입구의 두 기둥에서 시작한 수직의 풍경이 나무 끝에서 다시 만난다. 발밑의 길만 따라갔을 때는 놓치기 쉬운 장면이다.

운영자의 방문 안내도 이곳을 조용히 숲을 거니는 공간으로 설명한다. 대나무 앞의 짧은 촬영보다, 정해진 길 안에서 주변을 살피는 시간이 숲의 성격과 잘 맞는다.

광고

공식 방문수칙에 따라 탐방로를 지키고 식물 채취와 수목 훼손을 삼가야 한다. 최근 공지에는 반려견·유모차·등산스틱·음식물 반입 제한과 외부 스피커 사용 금지도 명시돼 있다. 숲의 길을 일상적인 공원과 똑같이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나무가 있는 또 다른 공간을 보고 싶다면 담양 소쇄원의 대숲과 누정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두 장소를 가까운 연계 코스로 묶기보다, 큰 숲과 작은 정원 중 어떤 분위기를 고를지 살피는 선택이다.

아홉산숲의 인상은 가장 큰 나무 한 그루보다 줄기들이 이어지는 깊이에 남는다. 11월 초 부산 여행에서 바다와 다른 풍경을 한 번 넣고 싶을 때, 숲의 높이를 따라 걷는 시간을 생각해 볼 만하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by Google Adsense


관련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