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의 높이가 마을 지도를 그린다”… 언덕과 골짜기에 초가·기와집이 이어지는 풍경

경주 양동마을, 설창산 아래 지붕과 돌담·갈래길로 읽는 역사마을의 가을

경주 양동마을의 기와지붕과 돌담 너머로 이어지는 언덕의 집들
경주 양동마을의 기와지붕과 돌담 너머로 이어지는 언덕의 집들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 2019)

가까운 기와지붕 너머로 또 다른 지붕이 나타난다. 낮은 돌담과 나무 사이로 시선을 옮길 때마다 집의 높이와 방향이 달라지고, 길은 그 사이를 갈라져 오른다.

광고

경주 양동마을은 강동면 설창산 아래에 자리한 역사마을이다. 평평한 거리 양쪽에 집이 줄지어 선 모습보다, 언덕과 골짜기에 생활 공간이 나뉘어 놓인 배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양동마을을 읽는 단서는 나뭇잎에만 있지 않다. 볏짚을 이은 둥근 지붕, 기와가 만드는 긴 선, 감나무와 돌담을 함께 보면 마을을 이루는 재료와 지형이 한 장면 안에서 연결된다.

가을의 색과 풍경은 날씨와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주 양동마을, 초가와 기와가 서로 다른 선을 만든다

양동마을의 둥근 초가지붕과 기와집, 수목이 층층이 겹친 풍경
양동마을의 둥근 초가지붕과 기와집, 수목이 층층이 겹친 풍경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 2019)

초가지붕은 처마 끝까지 둥글게 내려오고, 기와지붕은 작은 곡선을 반복하며 긴 선을 만든다. 두 재료가 나란히 놓인 자리에서는 지붕 하나의 모양보다 집과 집이 겹치는 관계가 더 또렷해진다.

양동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집성촌이다. 가옥과 정자, 생활을 잇는 길이 함께 남아 있어, 하나의 큰 건축물을 찾아가는 여행과는 다른 크기의 풍경을 보여 준다.

마을의 경사를 따라 살피면 담장 위로 보이던 지붕이 다음 구간에서는 눈높이 가까이 내려온다. 건물의 정면만 보며 지나갈 때 놓치기 쉬운 높이와 거리의 차이가 산책의 흐름을 만든다.

광고

감나무 한 그루가 풍경의 크기를 바꾼다

양동마을 초가지붕 앞 감나무 가지에 달린 주황빛 감
양동마을 초가지붕 앞 감나무 가지에 달린 주황빛 감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 2019)

초가지붕을 배경으로 감이 달린 가지가 가까이 들어온다. 멀리서는 지붕의 넓은 면이 먼저 보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작은 열매와 잎, 가는 가지의 방향이 시선을 붙잡는다.

볏짚의 부드러운 갈색과 감의 주황빛은 서로 다른 표면을 드러낸다. 마을의 가을을 바라보는 일은 산 전체의 색을 고르는 일과 달리, 집 곁의 나무와 생활 재료를 작은 거리에서 읽는 일이기도 하다.

넓은 지붕의 겹침을 본 뒤 이런 세부로 눈을 낮추면 풍경의 리듬이 달라진다. 담장 너머의 나무와 집 가까이 놓인 식물이 건축의 선을 조금씩 풀어 준다.

돌담과 계단 사이에 생활의 경계가 남아 있다

양동마을의 초가 앞 돌계단과 돌담, 주변 감나무
양동마을의 초가 앞 돌계단과 돌담, 주변 감나무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 2019)

낮은 돌계단이 집 쪽으로 이어지고, 그 앞뒤로 크기가 다른 돌이 담장을 이룬다. 지붕을 넓게 바라보던 시선은 이곳에서 문과 마당, 길의 경계를 따라 움직인다.

광고

양동마을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마을 입장권이 모든 가옥의 출입을 뜻하지는 않으며, 공식 관광 안내도 주인의 허락 없는 가옥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공개된 길과 관람 구역을 잇는 방식으로 보아야 생활의 공간과 여행의 동선이 함께 유지된다.

이 경계를 지키며 바라봐도 집과 집이 놓인 관계는 충분히 드러난다. 돌담 위의 처마, 길이 갈라지는 모서리, 나무 아래의 그늘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만든다.

위에서 보면 길과 집이 골짜기를 따라 묶인다

양동마을의 굽은 길과 초가·기와집, 작은 들판을 함께 담은 항공 전경
양동마을의 굽은 길과 초가·기와집, 작은 들판을 함께 담은 항공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 2019)

항공 전경에서는 길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 집과 작은 밭이 나뉘어 놓인 모습이 드러난다. 지상에서 담장 하나씩 보았던 풍경이 더 큰 마을의 일부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경주시의 공식 소개는 설창산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골짜기가 마을의 틀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집의 위치를 지붕의 모양만으로 읽기보다 경사와 길, 주변의 나무까지 함께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고

항공 사진의 시야와 골목에서의 시야는 서로 다르다. 넓은 배치를 이해한 뒤에는 가까운 담장과 처마를 볼 때도 그 너머의 공간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마을 바깥의 들판까지 풍경이 이어진다

들판과 물길, 설창산 자락의 집들을 함께 담은 양동마을의 넓은 전경
들판과 물길, 설창산 자락의 집들을 함께 담은 양동마을의 넓은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 2019)

넓은 전경에서는 지붕뿐 아니라 마을 앞의 들판과 물길, 뒤편의 산이 함께 보인다. 집들이 모인 구역은 주변 자연과 떨어진 작은 전시장이 아니라 더 큰 생활 풍경 안에 놓여 있다.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두 마을의 가치는 개별 고택에만 머물지 않고, 조선시대 집성촌의 생활과 건축, 자연환경이 연결된 모습에 있다.

계절별 관람 안내는 양동마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한다. 안동 하회마을의 강과 솔숲이 만드는 풍경과 나란히 살펴보면, 양동의 언덕과 골짜기가 만드는 배치도 더 분명해진다.

광고

양동마을의 가을은 한 채의 고택이나 한 그루의 나무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초가와 기와, 감나무와 돌담, 갈래길과 들판이 서로 다른 높이에서 이어지며 마을의 성격을 만든다.

지붕의 모양을 본 뒤에는 그 집이 놓인 경사와 길에도 눈을 둘 만하다. 건축의 작은 결에서 마을의 넓은 배치로 시선을 옮기는 산책이 이곳을 천천히 이해하는 방법이 된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by Google Adsense


관련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