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문 뒤에는 다른 시간이 있다”… 돌담과 대나무 사이에 남은 왕의 초상
전주 경기전, 태조 어진을 모신 정전과 돌담·대나무 협문으로 이어지는 가을 풍경

붉은 기둥 두 개가 길 위에 선다. 그 뒤에는 낮은 기와지붕과 돌담이 놓이고, 노란 나뭇잎은 문 위로 올라간다. 골목을 보던 눈이 문 안의 축선을 따라 길어진다.
전주 경기전 가을 풍경은 한옥마을의 골목과 닮았지만 공간의 목적은 다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고 제례를 행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살림집이나 사찰의 마당과는 다른 질서를 갖는다.
전주시의 문화유적지 안내는 경기전의 시작을 1410년으로 설명한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1614년에 중건되었으므로, 오래된 이름과 지금 보이는 건물의 시간을 구분해 읽게 된다.
문과 초상, 나무와 돌담을 한 흐름으로 보면 단풍 사진 밖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왕의 얼굴을 모신 정전에서 대나무가 감싼 협문으로, 넓은 축선에서 작은 틈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전주 경기전 가을과 왕의 초상

정전 안쪽의 초상은 화려한 단청 아래 놓여 있다. 왕의 얼굴을 가운데 두고 문과 기둥, 천장의 무늬가 둘러선다. 바깥에서 본 붉은 문이 안쪽의 한 대상과 연결되는 장면이다.
어진은 임금의 초상이다. 경기전은 조선을 연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한옥마을의 다른 건축물과 구별된다. 이 뜻을 알고 나면 건물의 중심과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봉안 장면만으로 특정 초상 원본의 현재 전시 상태를 단정할 수는 없다. 어진을 모신 공간의 의미와 실제 박물관 전시 정보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돌담 위로 커지는 가을 나무

담장은 사람의 눈높이에 가깝게 이어지지만, 나무는 그 경계를 훨씬 넘는다. 기와를 얹은 담과 지붕의 선이 단정하게 놓인 만큼 잎과 가지의 굴곡이 더 크게 보인다.
한옥의 지붕만 보았을 때와 나무를 함께 보았을 때의 공간감은 다르다. 낮은 건물과 큰 나무가 마주 선 모습은 경기전 가을 산책의 한 장면이다. 색의 양보다 서로 다른 높이에 시선이 머문다.
경기전 대나무숲과 협문

대나무가 감싼 협문 앞에서는 풍경이 좁아진다. 홍살문의 열린 틀과 달리 작은 문은 안쪽 건물의 일부만 보여준다. 곧게 뻗은 대나무와 돌길이 문으로 시선을 모은다.
이곳의 녹색은 가을 나무의 노란빛과 다른 성격을 가진다. 경기전의 계절 풍경은 모든 잎이 같은 색으로 바뀌는 장면보다, 대나무와 낙엽수 사이의 차이를 함께 보는 데서 풍부해진다.
협문은 건물 사이를 잇는 작은 문이다. 큰 정면만 따라가던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이처럼 다른 크기의 출입구와 담장의 조합이 보인다.
나무 문과 마루에 남은 빛

목조 건물의 창과 문에서는 빛이 길게 잘린다. 바깥 풍경을 넓게 보는 대신, 기둥 사이와 마루의 한 부분을 보게 된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무의 결을 드러낸다.
붉은 문과 노란 나무 뒤에 이런 작은 장면도 놓여 있다. 경기전에서 역사와 건축을 읽는 방법은 건물의 연도를 기억하는 데만 있지 않다. 사람이 드나드는 틀과 빛이 들어오는 간격도 공간의 질서를 보여준다.
도시 안에 남은 왕실의 마당

위에서 내려다본 경기전은 도시의 골목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건물과 나무가 담 안에 모여 있고, 그 바깥으로는 오늘의 전주가 이어진다. 외딴 유적지가 아니라 도심 속 제례 공간이라는 성격이 분명해진다.
사람이 살아온 골목을 중심으로 보는 안동 하회마을의 전통가옥 풍경과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난다. 경기전은 왕의 초상과 제례를 중심에 두고 문과 마당이 배열된 곳이다.
가을의 나무는 그 질서를 지우지 않고 다른 높이와 색을 보탠다. 한옥마을을 걷는 일정에 경기전을 넣는다면, 지붕의 수보다 문 안팎에서 달라지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간이 남는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by Google Adsen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