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두 겹으로 포개진다”… 산자락 아래 돌탑과 큰 전각이 만드는 가을

구례 화엄사, 각황전의 넓은 지붕과 문·돌계단 사이로 읽는 산사의 깊이

구례 화엄사 각황전의 두 겹 지붕과 앞쪽의 석탑·석등
구례 화엄사 각황전의 두 겹 지붕과 앞쪽의 석탑·석등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돌계단 위에 넓은 전각이 놓였다. 기와지붕 두 줄이 가로로 길게 겹치고, 앞쪽의 석탑과 석등은 다른 높이로 선다. 그 뒤 산자락까지 한 겹 더해지면서 평평한 정면에도 깊이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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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가을은 산 전체의 단풍만을 기다리는 여행과 결이 다르다. 지리산 자락의 이 사찰에서는 문과 마당, 계단과 전각이 서로 다른 높이를 만든다. 나무의 색은 그 사이에 끼어든다.

국가유산포털의 각황전 설명은 지금의 건물을 1702년에 다시 지은 전각으로 소개한다. 오래된 돌기단 위 목조건축이라는 구성을 알고 보면, 전각의 크기뿐 아니라 아래를 받치는 돌과 위를 덮는 지붕의 관계도 눈에 들어온다.

처음부터 큰 전각만 찾아가면 그 앞까지 공간이 열리는 과정을 놓치기 쉽다. 문 안의 짙은 그늘, 좁게 보이던 지붕, 계단 위에서 넓어진 마당이 각황전의 크기를 차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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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가을, 금강문 아래의 색

화엄사 금강문의 현판과 단청, 처마 아래 열린 통로
화엄사 금강문의 현판과 단청, 처마 아래 열린 통로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금강문 현판 위로 초록과 붉은색의 단청이 촘촘히 모인다. 기와 끝은 하늘을 향해 가볍게 들렸고, 문 안쪽은 바깥보다 어둡다. 작은 통로지만 색과 명암의 차이는 크다.

사찰의 문은 단순히 이름을 적은 표지판이 아니다. 바깥에서 내부로 시선을 넘기는 건축이다. 처마 아래로 들어설수록 밝은 하늘보다 가까운 기둥과 보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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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과 뒤이어 만나는 다른 문은 서로 다른 건물이다. 문을 한 장면으로 뭉뚱그리기보다 기둥과 처마, 통로가 만드는 틀을 각각 보는 편이 산사의 층을 읽기 좋다.

문 안의 그늘에서 지붕이 먼저 보인다

화엄사 문 통로 안쪽 그늘에서 바라본 나뭇가지와 기와지붕
화엄사 문 통로 안쪽 그늘에서 바라본 나뭇가지와 기와지붕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어두운 나무 바닥과 난간 사이로 바깥의 지붕이 드러난다. 문밖 나뭇가지는 밝은 하늘을 가로지른다. 멀리 있는 전각이 통로 안에서는 작은 사각의 풍경으로 들어온다.

앞서 본 문루의 채색 면과 달리 이 장면에서는 그늘이 시선을 정리한다. 주변의 많은 요소가 어두워지며 밖의 가지와 지붕 윤곽이 선명해진다.

통로를 지난 뒤에 다시 돌아보면 같은 지붕도 다르게 보인다. 건물 한 채의 정면만큼이나 건물 사이에서 시야가 열리고 닫히는 과정이 화엄사의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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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서 드러나는 돌기단의 높이

화엄사 대웅전과 앞마당의 석탑, 넓은 돌계단
화엄사 대웅전과 앞마당의 석탑, 넓은 돌계단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넓은 돌계단이 마당과 전각을 잇는다. 앞의 석탑은 수직으로 층을 쌓고, 뒤의 대웅전은 가로로 넓은 지붕을 펼친다. 사람의 크기가 그 사이에 놓여 기단의 높이를 가늠하게 한다.

대웅전과 각황전은 서로 다른 전각이다. 큰 건물 하나를 여러 각도에서 본 것처럼 여기는 대신 지붕의 층과 기단의 형태를 구분하면, 넓은 경내의 중심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엄사는 오랜 유래와 전란 이후의 재건 역사를 함께 지닌 사찰이다. 현재의 목조건축을 창건 당시 그대로 남은 모습으로 설명하기보다, 돌과 나무에 다른 시간이 쌓인 공간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각황전 처마와 노란 가지가 만나는 곳

화엄사 각황전 현판과 단청, 처마 옆으로 물든 노란 잎
화엄사 각황전 현판과 단청, 처마 옆으로 물든 노란 잎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가까이 다가가면 넓던 지붕은 잘게 짜인 공포와 채색 무늬로 나뉜다. 현판 옆으로 노란 잎이 걸리고, 가지는 반듯한 기둥과 다른 방향으로 뻗는다. 큰 전각에도 가까이 볼 세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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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은 밖에서 두 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위아래가 트인 구조다. 지붕이 겹쳤다는 인상만으로 일반적인 두 층 건물의 실내를 상상하면 실제 구조와 멀어진다.

단풍은 전각을 가리는 장식이 아니라 다른 선을 더한다. 목재의 반복되는 질서 옆에서 잎과 가지의 불규칙함이 드러난다. 나무마다 색이 드는 속도가 달라 이 대비도 날마다 바뀐다.

높은 마당에서 다시 읽는 전각의 간격

화엄사의 높은 쪽에서 내려다본 마당과 여러 전각의 기와지붕
화엄사의 높은 쪽에서 내려다본 마당과 여러 전각의 기와지붕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앞에서 따로 보던 건물들이 높은 시점에서는 하나의 마당을 중심으로 놓인다. 지붕 사이의 빈 곳과 계단의 방향이 드러나고, 뒤의 산은 경내 전체를 감싼다.

전각과 숲의 관계를 다른 산사에서 더 보고 싶다면 부안 내소사의 전나무길과 목조건축도 이어서 살펴볼 수 있다. 화엄사는 큰 전각과 층진 마당의 간격이, 내소사는 숲에서 전각으로 이어지는 길이 서로 다른 인상을 만든다.

화엄사의 가을은 산자락의 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 안의 그늘에서 시작해 돌계단을 지나 넓은 지붕 아래로 시선을 옮기는 시간이 있다. 잎의 절정과 별개로 건축의 깊이를 함께 보고 싶은 일정에 어울리는 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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