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이 언덕을 따라 휘어진다”… 성문 안팎에서 달라지는 가을 풍경

고창 고창읍성, 굽은 성벽과 문루·잔디마당이 이어지는 조선시대 읍성 여행

고창읍성의 굽은 돌성벽과 문루, 노랗게 물든 주변 나무
고창읍성의 굽은 돌성벽과 문루, 노랗게 물든 주변 나무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IR 스튜디오)

돌벽이 반듯하게 뻗지 않고 언덕을 따라 휜다. 벽 위의 길은 능선 쪽으로 올라가고, 바깥의 나무는 노란 가지를 펼친다. 가까운 돌의 거친 표면과 멀리 이어진 성벽의 선이 한눈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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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가을은 성벽 바깥의 색과 안쪽 마당의 여백을 함께 보는 여행이다. 모양성으로도 불리는 이 읍성은 조선시대의 방어 공간이다. 지금은 성문과 관아 건물, 숲과 마당이 서로 다른 크기의 풍경을 만든다.

고창군의 읍성 소개는 성벽 구간에 남은 글자와 축성의 역사를 설명한다. 돌벽을 단순한 산책길 배경으로 보기보다 여러 지역이 나누어 쌓은 경계로 바라보면, 이어진 선 안에서도 다른 표면이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멀리 보는 장면만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문루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에는 돌보다 붉은 기둥과 어두운 통로가 가까워지고, 문을 지나면 다시 넓은 마당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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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가을, 돌벽이 감싼 문루

고창읍성 공북루의 기와지붕과 붉은 기둥을 둘러싼 돌벽
고창읍성 공북루의 기와지붕과 붉은 기둥을 둘러싼 돌벽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IR 스튜디오)

기와지붕 아래 붉은 기둥과 푸른 문짝이 놓였다. 양옆에서는 성벽이 둥글게 돌아 나오며 문 앞 공간을 감싼다. 멀리서 본 성의 실루엣보다 안쪽의 깊이가 더 두드러지는 장면이다.

문루는 돌벽의 긴 흐름을 끊는 동시에 안과 밖을 연결한다. 같은 회색 벽 사이에서도 목재와 단청의 색이 모이는 곳이라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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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의 처마 끝을 본 뒤 아래의 돌을 살피면 재료가 바뀌는 경계가 보인다. 매끈한 채색 면과 거친 돌의 줄눈이 가까운 거리에서 대비된다.

어두운 문 안에서 바라보는 밝은 마당

고창읍성 문 통로의 붉은 기둥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마당
고창읍성 문 통로의 붉은 기둥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마당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문 안쪽은 그늘이 짙고, 바깥 마당은 빛을 받는다. 기둥과 보가 사각의 틀을 만들면서 나무와 낮은 지붕 일부만 드러낸다. 성문을 통과하는 짧은 순간에도 보이는 풍경의 폭이 달라진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문 안에서 내다보는 시선은 같은 읍성을 다른 크기로 보여준다. 높은 곳에서는 지형이, 낮은 문 안에서는 빛과 재료가 중심이 된다.

통로를 지난 뒤에는 사진의 틀이 사라진다. 멀리 있던 나무가 길 옆의 나무로 바뀌고, 성 안쪽의 마당과 건물이 하나씩 분리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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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에 남겨진 누각과 잔디의 여백

고창읍성 안쪽 잔디마당의 붉은 누각과 노랗게 물든 나무
고창읍성 안쪽 잔디마당의 붉은 누각과 노랗게 물든 나무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붉은 기둥을 세운 누각 앞에 낮은 잔디가 펼쳐진다. 키 큰 나무는 뒤에서 지붕을 감싸고, 작은 나무는 마당의 빈 부분을 나눈다. 성벽의 단단한 외곽과 달리 안쪽은 높낮이가 부드럽다.

읍성은 벽만으로 이루어진 유산이 아니다. 안쪽에서 머물고 행정을 보던 공간까지 함께 보아야 그 크기가 읽힌다. 누각과 건물 사이의 빈 땅도 이곳의 풍경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가을빛은 지붕 전체를 덮기보다 가지 사이에서 드러난다. 소나무의 짙은 녹색이 함께 남아 노란 잎과 채색 기둥의 색을 더 분명하게 나눈다.

화려한 문루 다음에 만나는 소박한 목재

고창읍성 안쪽의 긴 목조건물과 낮은 돌기단, 뒤편의 소나무
고창읍성 안쪽의 긴 목조건물과 낮은 돌기단, 뒤편의 소나무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긴 지붕 아래 나무 문과 기둥이 반복된다. 앞서 본 문루처럼 색이 강하지 않아 목재의 결, 문살의 간격과 돌기단의 높이가 먼저 보인다. 하나의 읍성 안에서도 건물의 표정은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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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건물 모습을 축성 당시 그대로 남은 모습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래된 성의 역사와 이후 정비된 공간을 구분해 보면, 돌벽과 목조건물을 같은 나이로 묶는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색이 적은 건물 앞에서는 계절의 배경이 더 또렷해진다. 소나무의 수직선과 가로로 길게 놓인 처마가 교차하며 마당의 단정한 형태를 보여준다.

성벽 너머에서는 고창 읍내가 이어진다

고창읍성의 굽은 성벽 너머로 보이는 고창 읍내와 먼 산
고창읍성의 굽은 성벽 너머로 보이는 고창 읍내와 먼 산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성벽은 숲을 따라 돌다가 읍내를 향해 시야를 연다. 가까운 돌담 너머로 낮은 건물과 도로가 이어지고 그 뒤에는 산이 놓인다. 옛 경계와 오늘의 생활 공간이 한 장면 안에 겹친다.

같은 고창에서 숲과 건축을 더 보고 싶다면 선운사의 가을 산사 풍경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읍성에서는 마을과 성벽의 관계가, 산사에서는 숲과 전각의 간격이 시선의 중심이 된다.

고창읍성은 성벽을 한 번에 다 보는 것보다 안과 밖을 번갈아 볼 때 더 선명해진다. 굽은 돌벽에서 문루의 그늘로, 잔디마당에서 읍내의 지붕으로 옮겨 가는 흐름이 가을 여행의 장면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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